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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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 있는 대나무 숲에서 한 소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흑진주 같은 깊이 있는 까만 눈동자와 흑단 같은 머릿결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는 그 미모만으로도 여러 남성들을 고열과 몸살을 동반하는 상사병의 마수에 빠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더불어 불안감에 가득 찬 표정은 그 효과를 배가 시켰으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깊숙한 숲인지라 인적이 없어 그녀의 표정을 본 남성이 없다는 점이다.

  “처음 보는 나무……”

  소녀는 자신의 옆에 놓여져 있는 자루가 긴 귀여운(?) 소형 전투망치(War Hammer)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비록 소녀가 많은 지역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으나, 전투의 여신의 사제로서, 여러 지역을 순례했던 기억 속에서도 생전 처음 접하는 묘한 식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자신의 신전에서 전투의 여신인 마제린께 저녁기도를 올리던 중.  결코 이런 숲과 인과관계가 있을 이유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꿈인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자 바람이 불어와 소녀의 긴 머리를 휘날렸다.  꿈은 아니다.  꿈으로 치기에는 주변에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실감났다.  팔을 꼬집어보아도 느껴지는 것은 고통뿐.


  “분명히 여신께 기도를 올리던 중, 여신의 말씀이 들려왔었는데……, ……를 찾으라…….  설마 신계?  하지만 뭔가 틀린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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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는 장소, 여신께 기도를 올리고 있던 마지막 기억, 그렇다면 신계이자 전사의 낙원인 엘류시온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녀가 상상하는 그리고 성서에서 묘사하는 풍경과도 너무나도 틀렸다.  이리저리 생각을 하던 소녀는 결국 처음 보는 식물이 많은 다른 지역의 숲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그 뒷일을 생각해 봐야겠지.”

  소녀는 주변에 있는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이 들고 있는 소형의 전투망치.  머리부분이 일반 전투망치에 비해 작기는 하지만 그 파괴력에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무기로 벌써 칠 년째 사용하고 있는 무기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자신의 오른손에 끼워져있는 금빛의 반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는 모르지만, 공격계 주문이 내장되어 있는 주문 저장반지로 보였다.  양 다리에 채워져 있는 발찌는 오랜 친구이자 대 마법사인 케이가 만들어준 마법 도구로, 도약과 이동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아티팩트 수준의 마법 도구이다.  힐링포션이 3개와 성수 3병.  고위사제로써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도구일수도 있으나,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소녀는 허리띠에 있는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마제린의 디바인 마크.  그 성표는 교단 내에서 소녀의 지휘가 절대 낮지 않음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이정도의 도구라면 어지간한 상황도 버틸 수 있겠지.  ……. 식량은…….  오랜만에 맹탕을 먹게 생겼군.  에휴~~  빨리 마을을 찾기를 마제린께 비는 수밖에 없나.”

  소녀는 긴 한숨을 쉬었다.  소녀가 들고 있는 디바인 마크를 미루어 볼 때, 소녀는 음식물의 창조를 행할 수 있는 고위 사제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식량에 대한 걱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나, 문제는 그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밍숭맹숭한 밀가루를 씹는 느낌.  따라서 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비상시 중에 비상시로, 일반 음식이 있다면 절대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신의 권능 중에 하나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길 원한다면, 마제린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럼 이동해 볼까나.”

  소녀는 나무사이로 난 길로 보이는 곳을 따라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가도 숲은 끝날 줄을 몰랐다.  어지간히도 큰 규모였다.  다행스러운 건 깊은 숲임에도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다.  비록 전투의 여신의 사제로써 어려서부터 전투 훈련을 받아와 웬만한 전사이상의 단독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고, 신성마법과 연계를 하면 어떤 몬스터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나, 그것도 한두 마리일 때의 이야기지 오크나 코볼트처럼 떼를 이뤄 덤벼들면 방법이 없었다.

  ‘부스럭’

  소녀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빤히 처다보고 있었다.

  “이런.  소저의 아름다움에 큰 실수를 하고 말았구려.  본 좌는 사마 인 이라고 하오.  무례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소저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소녀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한 말은 대륙공용어가 아니다.  물론 고대어를 비롯한 자신이 알고 있는 어느 지역의 언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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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어디지요?”

  자신이 한 말 역시 자신이 의도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구사된 언어임이 확실했다.  상대가 분명히 알아들었으니까

  “허허.  이곳의 지명을 묻는 것이오?  이곳 하남성을 모르다니.  세외출신이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이 있는 곳의 지명을 모르다니.”

  하남성.  생전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소녀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다시 한번 해야 하는 고민.  이곳은 어디인가?  그런 소녀를 현실로 되돌려 놓은 것은 그녀의 등을 타고 넘는 오싹한 기운이었다.  마치 몸속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 나쁜 느낌.  그 느낌의 출처는 바로 앞에 있는 중년이었다.

  음욕에 가득 찬 더러운 느낌.  디텍트 이블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허허.  갈 곳이 없는 게요?  그럼 본 좌와 함께 가겠소?  내 이래 뵈도 한 방파의 호법을 맏고 있는 자라오.”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 남성을 따라가 봤자 나올 결론은 하나였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그럼 소저 잠시 실례를 하겠소.”


  중년의 남성은 번개같이 치고들 어오며 검을 휘둘렀다.  소녀를 죽이기 위한 공격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소녀는 손에 들고 있는 전투망치를 들어 검을 막았다.

  ‘깡.  까,깡.’

  “실력이 제법이구려.  그러나 본 좌를 상대하기에는 내공이 너무나도 부족하오.  본 좌는 소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구려.  그러니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사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으나, 소녀에게는 기분 나쁨 그 자체였다.  분명 상대의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검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저 정도라면 일류기사급의 실력이다.  그러나 무기를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소녀는 전투망치 자루의 끝부분으로 손을 옮겼다.  자루를 힘껏 잡아당기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빠진 자루를 돌리자 내부에서 약 30cm정도의 날이 나와 단창(短槍)이 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끝까지 벌주를 택하겠다.  그것도 좋겠지.  여자는 나름대로 튕겨야 제 맛이거든.  내 반드시 너를 취하고 말겠다.”

사내는 다시금 소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여신이신 마제린이여……  지금 전투가 시작됨에…… 당신의 권능을 구합니다……  저에게…… 강철과 같은 용기를, 적을…… 내칠 수 있는 힘을, 당신의 이름아래  싸우는 자에게 권능을 내려 주소서……  블레스(BLESS).”

  힘겹게 사내의 공격을 막아내며 외워나가던 주문이 완성되자 소녀의 주변을 빛이 감쌌고, 소녀는 사내의 공격에 점차 대응을 해 나갔다.

  사내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그러나 그 정도로 본 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내의 공격이 점차 거세졌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지 소녀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않으나, 소녀가 걸치고 있는 마제린의 수도복이 점점 잘려져 나가 하얀 살을 들어냈다.  소녀도 사내가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실력자임을 느꼈다.

  ‘이대로는 당하고 만다.’

  소녀는 있는 힘껏 창을 밀어 사내와의 거리를 벌렸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신의 품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귀환(Word of Recall)”

  이 주문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신전내 자신이 형성해 놓은 장소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녀의 눈앞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사내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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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세외의 언어요?  처음 듣는 말이구려.  그래 이제 마음을 바꾸었소?”

  소녀는 혼란에 빠졌다.  주문이 듣지를 않는다니.  6살 때 처음으로 신의 권능을 행한 이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전만해도 블레스 가 확실히 시전 되지 않았던가.

  “허허.  아무래도 안 되겠구려.  그럼 다시 실례를 하겠소.”

  사내는 멍하게 있는 소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꺄~~~~~~~~악”

  혼란에 빠진 소녀는 사내의 행동에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사내의 손이 소녀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일갈이 사내의 행동을 저지했다.

  “남궁세가의 영지에서 여인에게 행패를 부리다니.  누구냐?”

  일갈과 함께 나타난 것은 젊은 청년이었다.  소녀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사내의 입장에서는 다된 밥에 코빠트리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내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청년을 돌아보았다.


  “남궁세가?  이곳이?  그…….  그렇구려.  그럼 소협은?”

  “본인은 남궁상욱이라고 하오.  본 세가의 세력권 안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그대는 누구시오.  그리고 이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소?”

  ‘남궁상욱?  육룡사봉(六龍四鳳)의 빙옥소검왕(氷玉小劍王) 남궁상욱이란 말인가?  게다가 남궁세가의 세력권.  젠장, 제수 옴 붙었군.  다된 밥에 코빠드려도 유분수지.’

  현 무림내의 최고 후기지수를 일컫는 호칭인 육룡사봉중 최고수가 바로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상욱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의 무예는 독보적으로 동갑내기들 사이에는 상대가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본 좌가 실수를 한 모양이오.  그럼…….  이만 실례를 하겠소.  오늘 일은 잊어주시구려.”

  사내는 당황스런 얼굴로 경공을 시전 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소녀의 상태가 걱정이 된 남궁상욱은 사내의 추적을 포기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향했다.  남궁상욱의 눈이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름다운 소저다.  경국지색이란 이런 것인가?’

  남궁상욱의 복잡한 속마음을 한마디로 대변해주는 말이다.  흑진주 같은 깊이 있는 까만 눈동자와 등까지 곱게 내려기른 흑단 같은 머릿결, 새하얀 피부.  비록 자신이 산 세월이 그리 길지 않았고, 현 무림 최고의 미를 자랑한다는 무림삼화와도 대면을 해보았으나, 이정도 미모의 여인은 처음이었다.

  “어디 다친곳은 없으시오?  여인의 몸으로 이런 외진 곳에 있다니……”

  남궁상욱의 말에도 소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묘한 옷에 머리를 올려묶은 귀공자.  방금 전의 그 사내도 그렇고 지금 이 귀공자도 그렇고 난생 처음 보는 복식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습격한 사내의 복식이야, 낡았으니 넘어간다 쳐도, 눈앞에 있는 이 공자의 복식은 상당한 신경을 써서 만든 것임에 분명한 고급 옷이다.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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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예?  아! 이런.  정신이 없어 구해주신대 대한 감사의 인사도 못 드렸군요.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소녀의 양손은 검상에 의해 걸레가 되기 직전이나 그래도 끝까지 소녀의 몸에 감겨 자신의 맏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 사제복을 잡고, 다리를 굽히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남궁상욱은 생전 처음 보는 인사에 당황스러웠으나, 그 기품과 예절바름이 진심을 다한 예(禮)임을 알 수 있었다.  소녀의 예는 그녀가 입고 있는 묘한 복식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작품화 되었다.  비록 그 복식이 검에 베어져 너덜너덜 해졌으나 이는 그 어떤 흉도 되지 않았다.  잘려진 옷사이로 보이는 소녀의 뽀얀 우윳빛 살결에 남궁상욱은 얼굴을 붉혔다.

  “……?”

  “………….  험!  험!”

  소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 남궁상욱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께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멋쩍은 듯 엄한 하늘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태어난 지 24년.  그리 오래 산 인생은 아니었으나, 여성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당황스럽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험!  본인은 이곳 남궁세가의 소가주로 있는 남궁상욱이라 하오.  실례지만 소저의 성함을 알 수 있겠소?”

  “예.  소녀는 마제린의 검.  아프네온 지방의 주임사제로 있는 유이리 렌 휘오나 라 합니다.  용맹스런 용사의 앞에 한 자루의 검이 되기를.”

  “……예?”

  남궁상욱은 소녀의 자기소개에 또다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뭐라고 분명히 말은 했으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유이리(劉怡璃)라는 이름으로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남궁상욱의 반응을 보고 유이리 역시 이곳이 자신이 있던 대륙이 아님을 알았다.

  유이리가 있던 대륙은 1차 대륙 통일 전쟁을 통해 대륙이 통일된 이래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해왔고, 여러 다른 신들을 믿는 종교단체 역시 상대의 종파를 인정하며 공생의 길을 걸어왔다.  각 종파의 사제는 물론이고, 각국의 귀족들은 비록 자신이 믿고 섬기는 신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상대 종교의 인사말정도는 아는 것이 기본 예의이며, 교양인 것이다.  전쟁의 여신 마제린은 대륙 내에서도 그 신자수가 1,2위를 다투는 보편화되어 있는 신은 아니나, 교리와 사제들의 능력으로 인해 기사들이나 귀족들에게 널리 퍼져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또한 자랑은 아니지만 유이리는 마젤린의 가희, 마젤린의 꽃으로 불리는 교단 최연소 주임사제로 차기 대사제의 직위가 유력한 유명인사 중 하나이다.  귀족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이름정도는 들어본 기억이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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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눈앞의 청년은 유이리의 인사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무방할 것이다.  이는 고급 옷을 입고, 품격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높은 사회적 지휘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요, 전쟁의 여신 마제린 역시 모른다는 것을 뜻했다.

  “그냥 유이리라고 불러주십시오.”

  유이리는 눈앞에서 허둥대고 있는 남궁상욱을 우선 당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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